[인문학향연]<28> 존재의 심리학
 
불안한 안전, 전쟁같은 삶들
 
정의석  기사 게재일 : 2013-07-23 06:00:00
 
 
 
▲ 아브라함 H. 메슬로 저 /문예출판사.
　인간이란 무엇인가?


　요즈음 사람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과 동물은 어떻게 다른가와 같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냥 일상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그런 어려운 질문보다는 오늘 점심을 무엇을 먹을까가 훨씬 더 중요하다.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본질적 질문이 유행한 때가 있었다. 심리학에서도 그러한 ‘큰 질문’이 다루어지던 때가 있었다. 정신분석의 프로이트, 행동주의의 스키너 등은 심리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고, 그들은 각자 인간에 대한 자신들의 관점을 세상에 알렸다.

　프로이트와 스키너는 서로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비판적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간에 대한 관점은 유사했다. 그들은 모두 인간의 숭고하지 않은 모습을 드러내는 데 열심이었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지니고 있던 성적이고 공격적인 본성을 가차 없이 드러냈다. 한 개인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본성을 인정하고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스키너는 ‘마음’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도 마음이 있어 생각하고 느끼고 글을 썼겠지만 마음을 연구 대상으로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학문이 비과학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이후 사람들은 자신들이 조금 더 고상하고, 질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다른 존재일 것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혼란에 빠졌다.

　이 순간 매슬로우와 같은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이 등장했다. 그들의 사명은 신의 옆자리에 있었을 인간의 자리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었다. 오랜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 스스로를 숭고한 것으로 정의했던 추억을 과학으로부터 찾아오는 것이었다.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에게 프로이트와 스키너와 같은 학자들이 밝혀버린 동물과 동일한 본성을 소유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다시 숭고한 존재로 인식하게 하는 것은 극복의 대상이었다.

　

　아내·딸에게서 인간 숭고함 발견


　인본주의 심리학자로 알려진 매슬로우는 엄격한 행동주의 훈련을 받았다. 그의 삶에서 가치관과 학문적 지향성을 바꾸게 한 것은 아내와 그의 딸이라는 가족이라는 만남이었다. 그의 어렸을 때 삶은 척박했다.

　러시아에서 이주한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뉴욕의 빈민가에서 성장하였다. 가난 때문에 어머니는 냉장고에 열쇠를 채워 관리하였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를 “잔인하고, 무식하고, 적대적이고, 정신착란을 일으킬 정도로 사랑을 주지 않는 사람”이라고 표현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그의 외모를 자주 조롱하여서 매슬로우는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했다. 그는 지하철을 탈 때 항상 사람들이 적은 빈칸을 찾아다닐 정도였다.

　그는 자신이 베르싸라는 아가씨와 결혼할 때까지 자신의 삶이 거의 의미가 없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그녀로부터 부모에게서 받아보지 못한 사랑과 안정을 제공받았다. 그리고 첫 아이의 출산을 경험하면서 놀라움과 신비로움에 휩싸여 인간에 대한 관점 자체가 변하는 경험을 한다. 그래서 그는 “나는 아이를 가져 본 사람은 누구도 행동주의자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다”고 말했다.

　그의 과제는 동물과 공유하고 있는 또는 많은 인간들이 보여주는 동물적 본능들을 어떻게 인간이 지니고 있는 숭고함과 모순 없이 연결시키는가였다. 중학교 교과서에도 나와 있기 때문에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이면까지 이해해보자.

　그는 알다시피 생리적 욕구에서부터 시작하여 안전의 욕구, 소속과 사랑의 욕구, 존경의 욕구, 자기실현의 욕구까지 피라미드 형태의 욕구위계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 간단해 보이는 욕구위계설을 통해 동물적 욕구가 어떻게 인간만의 욕구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였다. 그는 하위의 욕구들이 어느 정도 충족되어야 상위의 욕구가 나타난다고 보았다. 만일 하위의 욕구가 심각하게 결핍되어 있다면 상위의 욕구가 나타나기는 쉽지 않다고 본 것이다.

　

　홀로 안전 추구는 사회 모두 불행


　매슬로우의 이론을 나 자신과 한국사회에 적용해보자. 나는 어떤 욕구단계에 속해있는가? 한국사회는 어떤 단계에 속해 있는가? 가장 상위의 단계인 자기실현단계라고 말하고 싶지만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존경의 욕구일까? 아마 그렇게 말하는 것마저도 어려울 것 같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안전감이 아닐까? 우리는 병과 실직과 해고와 사고 등에 대한 강렬한 공포심에 휩싸여있다. 어느 한 순간 가족 중 누군가 병이 들면 그 가족은 붕괴한다. 실직이나 해고 또는 사업실패는 인생의 끝과 다름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삶의 끝없는 전투에서 이기고자 악착같아진다.

　자기보다 나이 든 대리점주에게 막말을 하고, 밀어내기를 하고, 떡값을 받는다. 학생들에게는 밤에 잠을 안 재우고,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을 체벌하고, 무시하고 인간취급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동차보험에서 시작하여 실손보험, 종신보험 그리고 마지막에는 상조에까지 가입한다. 무수한 보험 상품은 우리의 삶의 안전판인 듯 보이지만 우리의 공포를 먹고 자라는 괴물이 되었다.

　생물학적인 욕구를 제외하고 심리적 욕구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안전의 욕구이다. 이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인간은 자신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성장을 포기한다. 정치인과 경제인 그리고 사회는 요즈음 청년들의 눈높이가 너무 높다고 비난한다. 이처럼 불안한 시대에 미래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지금 자신의 능력에 따른 최대의 보상을 희망하는 것이 욕심일까 아니면 가장 현명한 선택일까? 싸움도 크게 다치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이 있을 때 하는 것이다. 만일 생존을 건 싸움이라면 룰과 도덕이 중요할까? 매슬로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병든 사람은 병든 문화에서 만들어진다. 건강한 사람은 건강한 문화에서 만들어진다. 한 사람의 성격적 문제는 누군가 이 사람의 심리적 뼈대와 내적 본성을 파괴하고자 할 때 이에 대한 강력한 저항일 수 있다.”

　그렇다면 안전의 욕구를 확보하는 길은 무엇일까? 건강하지 못한 사회에서 안전의 욕구를 확보하는 길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 뿐일까? 매슬로우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에서 혼자서 자신만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자신과 사회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경고한다. 그는 “자기 자신을 다양한 측면에서 초월하고 자신의 문화도 초월하여 자신이 속한 지역의 집단 구성원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종 전체의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고 권한다.

　사회의 문화와 관습, 정치와 경제 상황 등에 쫓겨, 사회가 퍼트린 막연한 공포에 쫓겨 자신의 삶을 안전을 확보하는 것에만 소진하지 말고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있는 기회에 쓸 것을 간곡히 전하고 있다. 그는 지금 죽고 없지만, 만일 그의 사후 40여년이 흐른 지금 그가 한국에 왔다면 큰 우려와 슬픔으로 한국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정의석<무등지성 교수>
필자는 무등지성 사무국장으로, 미래학습상담센터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전남대와 조선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