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만으로 반성 이끌 수 없다

[기고] 
정의석
 
기사 게재일 : 2012-03-13
 
　어느 인디언 부족에게는 다음과 같은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구성원 중 한 명이 공동체에 해로운 일을 하면 그를 우선 마을 한 가운데 둔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당신이 자신에게 해준 고마운 일’, ‘당신이 마을에 기여한 점’, ‘당신을 얼마나 아끼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준다. 이때 이러한 대화는 하루에 끝나지 않고 마을에 있는 마지막 사람이 끝날 때까지 며칠이고 계속된다.

　마지막 사람이 전달한 말이 끝났을 때 가해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마을 전체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상상해보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그들은 아마도 그 과정에서 감동과 새롭게 변화된 관계를 느꼈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최근 학교폭력에 대한 국가차원의 대응을 보면서 우리들의 대응도 그러한 모습을 닮으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이제 봄이 되고, 학생들이 새로운 학교, 학년으로 등교를 시작했지만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부모들의 마음은 걱정이 앞선다. 학교폭력을 근절하겠다는 경찰의 활동과 언론의 성토가 오히려 학부모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경찰은 전국에 일진조직인 165개를 파악하고, 일진학생들을 수사·검거하고 있다고 한고, 언론은 이 내용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은 경찰이 이처럼 노력하니 가까운 시일 안에 학교폭력이 사라지겠다는 희망을 갖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폭력조직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가까이 있고, 많이 있다가를 떠올리면서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적으로 가해학생에 대한 분노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가해학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실형을 선고받았고, 자살한 피해자의 보호자는 엄한 처벌을 요구하였다. 그 기사에 달린 댓글은 “처벌이 약하다, 가해자의 부모까지 함께 처벌해야 한다.” 등의 심한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검거·처벌·격리 등은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사회의 불안을 더 악화시키는 것 같다.

　학교폭력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사회가 안전하다는 느낌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학생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관점에서는 그들이 언젠가 폭력성을 드러낼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다. 또한 가해자를 처벌했다하더라도 그들이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분노는 의미가 없다. 가해자들에 연구결과는 폭력을 가한 계기 자체도 명확하지 않고, 자신의 폭력행동을 단지 ‘장난’으로만 생각하는 가해자들에게 처벌은 오히려 처벌에 대한 억울함을 느끼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사회가 안전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가해자들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반성을 수용하고,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길 때 가능하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공감은 비난이나 비판에서가 아니라 피해자와의 만남, 대화를 통해서 가능하다. 최근 평화·용서·화해에 초점을 둔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라는 개념이 관심을 받고 있다. 이는 학교폭력으로 인해 발생한 갈등을 단순히 해결하는 차원을 넘어 사회적 변화의 토대로 삼으려는 움직임이다.

　‘회복적 정의’라는 개념은 1974년 캐나다 온타리오 주 엘마이라라는 작은 마을에서 고등학생 두 명이 마을에 있는 스물두 집의 창문을 깨고 자동차 타이어를 찢는 등 난동을 부린 혐의로 체포되면서 시작되었다.

　이때 이 지역 보호관찰관이었던 마크 얀치와 데이브 월스가 피해자와 가해자가 대면하는 것이 치유적인 측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제출하였고, 이 의견이 판사에 의해서 받아들여졌다. 가해학생들은 피해자의 집들 일일이 찾아가 자신들이 누군지 밝히고, 사과하고, 피해에 합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결과는 놀랍게도 피해자였던 주민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주었으며, 가해학생은 이후 계속 마을과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이러한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가 조금 더 성숙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학교폭력으로 발생된 사회적 갈등을 근절하거나, 해소하는 관점이 아니라 학생들을 이해하고, 소통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의석 <미래학습상담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