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라는 탈을 벗어던지고 아이처럼 놀아보자

올해부터 일선 학교가 주5일제 수업이 되었다. 학생들은 토요일이 쉬는 날이 된 것이 기쁘면서도 평일의 늘어난 수업에 부담을 느낀다. 중학교 3학년인 딸은 7교시 수업이 엄청 길게 느껴진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학생들의 적응도 쉽진 않겠지만 부모들의 적응은 그보다 훨씬 힘겹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학교를 간 오전 시간만은 자유였는데 이젠 토요일 오전부터 온 종일을 자녀에게 묶여있게 되었다고 하소연을 한다. 부모들의 자녀들에 대한 부담감, 휴일에 대한 부담감은 무엇 때문일까?

상담소에 있다 보면 의외로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과 놀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놀아야 할 것을 찾지 못하기도 하고, 노는 방법을 모를 때도 있다. 상담을 받고 있는 한 부모는 자녀들이 상담소에 와서 상담자와 자신의 자녀가 노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했다. 놀이 중 한 가지는 ‘할리갈리’라는 보드게임으로 대부분의 아동과 청소년이 익히 아는 게임이다. 서로 돌아가면서 과일이 그려진 카드를 내게 되는데, 이때 서로 낸 카드의 같은 과일의 개수를 세어 5가 되면 가운데 있는 종을 먼저 때리는 게임이다. 상담자는 아동이 이기면 안타까운 듯 “어! 대단한데. 선생님이 더 열심히 해야겠는데.” 등의 반응을 해주고, 상담자가 이기면 “야호! 이거 신나는데.”등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부모들은 놀이를 보면서 “아이들과 이렇게 노는 것이군요. 집에서도 놀 수 있네요. 저희들은 단지 놀이동산이나 관광지나 가면 부모로서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해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네요.”라고 자신이 부모역할에서 간과하고 있었던 부분을 반성했다.

또 다른 아버지는 노는 방법을 모르는 분이었다. 아들은 그 아버지를 무척 싫어하였다. 엄격하고 권위적인 면도 그러했지만 같이 놀아줄지 몰랐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집에서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물어보았다. 아버지가 다른 부자관계처럼 씨름이나 권투 등을 한다고 하였다. 궁금해서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았더니 아버지 자신이 열 번 싸워 열 번 다 이겨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그건 놀이가 아니라 ‘상처’잖아요!) 많은 부모들은 형식적인 행사처럼 축제, 체험활동, 놀이동산, 박람회 등에 가야 놀이와 관련된 부모로서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놀이는 관계에 대한 체험이며,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며, 변화의 원동력이다.

자녀와 노는 동안 아버지로 남거나, 선생님으로 남아있다면 그것은 놀이가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수업의 연장이다. 노는 동안 아버지는 아버지의 역할, 탈, 권위를 벗어던지고, 자신의 어깨에 힘을 빼고, 과거의 아이모습으로 돌아가서 자녀와 놀이를 즐겨야 한다. 간혹 내가 자녀, 조카, 내담자들과 놀 때 주변 사람들이 자주 이런 말을 했다.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노는 것 같아요. 아이보다 더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아요. 진짜 즐기는 건가요?” 절반은 맞고, 절반을 틀렸다. 이미 40대 중반인 어른이 어린이와 같아질 수는 없다. 하지만 어린이처럼은 될 수는 있다. 전라남도에 있는 모 초등학교에 치료레크리에이션을 이용한 집단상담을 갔다. 초등학생들과 딱지치기를 하였다. 땀을 흘려가며 온 힘을 다해서 딱지를 치자 가장 문제를 많이 일으키고 반항적이었던 한 학생이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감동스러워 하는 눈빛이었다. 그 학생은 그 후 자신의 차례가 오자 나만큼 열심히 팔을 휘두르면 딱지를 쳤다. 쉬는 시간에는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 친한 친구처럼 농담을 주고받았다.

교육청과 일선학교는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토요일 오전에 축구, 농구, 배드민턴 등 놀이 활동을 제공해주고 있다. 나름대로 고민과 노력이 엿보인다. 하지만 놀이는 수업이 아니다. 놀이는 관계에 대한 체험이다. 특히 아동에게 부모와의 관계는 중요하다. 교육계와 부모들이 신경 써야 할 것을 토요일 오전을 또 다시 형식화된, 생명력 없는 행사로 만들지 말고, 부모와 자녀가 관계를 맺고, 그 속에서 성장하는 기회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잠시 생각해보는 것이다. 한 초등학생이 심리검사를 했는데 우울과 불안이 극단적으로 높게 나왔다. 학교를 방문한 어머니에게 가정환경에 대해 물어보았다. 자녀가 하교를 하면 학교버스가 집에 내려주는데 주변에 집이 없어서 어렸을 때부터 혼자서 놀았다고 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람 사는 곳으로 가서 살아.”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진정 행복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자녀와 놀 줄 아는 부모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부모들이 덜 지쳐서 가정으로 돌아가도록, 너무 늦지 않게 돌아가도록 사회와 기업이 허락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가정 안에서 컴퓨터와 텔레비전에 의존하지 않고도 적은 돈과 시간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 놀이방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돈이 많지 않아도 된다. 서로 대화할 수 있다면 사소한 놀이도 즐겁게 된다. 어렸을 때 해보았던 공기놀이도 좋고, 윷놀이도 좋고, 멀리뛰기도 좋다. 돈을 들인 놀이 등은 재미는 있지만 부모인 당신에 대한 친밀함을 느끼게 하지는 못한다. 간단한 놀이는 시간을 많이 뺏기지 않아도 된다. 질적으로 충만한 놀이로 충분하다. 그리고 어차피 자녀들도 부모들과 놀아주는 것이 나름대로 피곤한 일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