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석 사회분석] 잔혹동시 그리고…잔혹교육, 잔혹사회 - 표현이 잔혹한가, 현실이 잔혹한가?
 
정의석
기사 게재일 : 2015-05-18 06:00:00 
 


　최근 초등학교 학생이 쓴 동시로 시끄럽다. 결국 해당 출판사와 학부모는 동시가 포함된 시집을 전량 폐기하기로 수용했다.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진 섣부른 비난과 그에 따른 순응적인 결정의 속도로 인해 그 문제에 대해 충분한 숙고를 할 만한 여유도 주지 않은 채 다른 사회적 이슈에 묻혀 사라져 버린 점이 안타깝다. 왜냐하면 이번 잔혹동시 사건은 우리 사회의 교육문제의 핵심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으며, 우리 사회의 문화적 수용성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였기 때문이다.

　이번 잔혹동시에 대한 비난을 정리하면 대체로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 아동이 어떻게 그토록 공격적일 수 있는가? 둘째, 어떻게 자녀가 존속폭력 혹은 존속살인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가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문학작품이자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을 폐기할 만큼 그 내용은 사회적으로 수용 불가능한 것인가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사람들은 10세의 여아가 어머니를 죽이는 상상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놀라워했다. 그렇다면 인간의 공격성은 언제부터 시작되는가? 그리고 10세 여아의 공격성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

　프로이트가 친구의 아들인 꼬마 한스를 정신분석 하였다. 꼬마 한스는 5살 남자아이로 어머니에게 사랑을 느끼고 대신 아버지를 질투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상태였다. 그는 아버지가 “너는 아버지가 쓰려졌으면 좋겠지?”라고 묻자, “응 아빠가 맨발로 뛰어가다가 돌부리에 부딪쳐서 피를 흘렸으면 좋겠어. 그러면 내가 엄마하고 단 둘이서 잠깐이라도 있을 수 있을 테니까”라고 답한다. 프로이트 이후의 정신분석 계열의 연구자들은 인간의 공격성이 프로이트가 서술한 연령보다 훨씬 이전에, 인간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한다고 본다.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비우호적 환경,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환경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발달시켜온 감정과 행동이 공격성이다. 즉 모든 생명체의 기반에 공격성이 있다.

　

 　아동에게 공격성 없다’는 관념의 덫

　

 　아동에게 공격성이 있을 수 없다는 고정관념은 역설적으로 도덕과 규율이라는 이름아래 아동에게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준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교실에서 일어난 친구끼리 다툼에 대해 그것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며, 반성을 통해서 제거되어야 한다고 보고 대응한다면, 그것은 단지 일시적으로 아동의 폭력성을 억압한 것일 뿐 나중에 더 큰 폭력성이 되어 나타날 뿐이다. 오히려 그러한 다툼이 일어날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이 왜 일어났는지 아동들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아동의 폭력성을 혹은 인간의 폭력성을 본성으로 인정하는 것이, 그리고 그것을 지나치게 악한 것으로 보지 않는 것이 폭력성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된다.

　둘째 사람들은 존속폭력과 존속살인을 암시하는 내용에 분노했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폭력과 살인은 분명 비도덕적이며, 하물며 부모와 자녀 사이의 폭력과 살인은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그러한 일은 비일비재했고, 어떤 경우에는 그 상황과 맥락에 따라 그 행동이 정상참작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즉, 사건 그 자체에 대한 평가는 비도덕적임에 동의하지만, 그 사건이 발생한 원인에 대해 이해해야 하며, 그러한 이해가 평가에 반영되어야 사건에 대한 대응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태도는 달라진다.

　존속폭력은 대체로 부모와 자녀의 대립이 첨예화되고, 서로의 의사소통이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실 상담소에서 이러한 일은 빈번히 관찰된다. 그리고 대체로 자녀의 기질적 문제로 부모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이 일어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다.

　한 고등학생이었다. 상담실에 들어오는 그의 눈빛은 마치 범죄자 같았다. 그는 곧 누군가를 헤칠 만큼 강한 적의를 온몸으로 발산하고 있었다. 부모의 요구는 자녀가 학교를 그만두려고 하는데 학교생활을 다시 잘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자녀와 잠시 상담을 했다. 그는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을 실현시킬 대체물이었으며,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업에 매달렸다. 중학교 시절까지 시험성적이 떨어지면 야구배트, 골프채 등으로 맞곤 했다. 현재 자신이 다니는 학교도 아버지의 요구에 의해 억지로 다니고 있었다. 그는 그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오전 등교시간부터 야간 자율학습까지 아버지와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을 무시하는 교사들을 죽이는 상상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의 공책에는 아버지와 교사를 죽이는 장면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는 끔찍한 공격성을 보이고 있지만, 고통 받고 있다는 점이 분명했으며, 보호하고 돌봐줘야 할 학생이었다는 점은 의심이 없었다. 그 아버지는 자녀의 고통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자신의 욕심에 눈이 멀었었다. 결국 아버지가 변해야 한다는 상담자의 충고도 멀리한 채 자녀가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해줄 다른 상담자를 찾아 떠났다. 그 후로 그 부자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했다.

　

 　자신 회피, 어른들의 마녀사냥

　

 　또 다른 고등학생의 사례가 있다. 그 학생은 고등학교 입학 전에도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무난히 넘어가곤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입학 후 자녀의 성적에 대해 어머니가 일일이 간섭하고,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인간으로 가치가 없다는 듯이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갈등이 약 삼 개월 정도 지속이 되었을 때 다시 상담소를 방문한 두 사람의 모습은 중학교 때 보았던 모습과는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자녀는 어머니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왜 자신을 무시하냐며 억울해했다. 어머니의 태도가 놀라웠는데 자녀의 분노의 포효가 들리지 않은 듯 고개를 돌린 채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 마지막에 경멸하는 어머니의 표정이 스치자 자녀는 이성을 잃은 채 자신이 들고 있는 물건을 어머니의 얼굴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 학생은 지금은 대학교에 입학하여 잘 다니고 있지만, 그때의 상처를 아직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대체로 자녀들의 폭력은 자신들의 지속적인 요구와 기대가 여러 번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반응이 적절히 나타나지 않을 때 마지막에 기대는 수단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학업에 대한 부담감으로 자살하는 학생들에 대한 기사가 식상해 질만큼 이어지고 있다. 연령으로 보면 초등학생에서 대학원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지금도 고등학교에서는 야간10시까지 자율학습을 하고 있으며, 하교 후에는 과제를 마치기 위해,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새벽 두세 시까지 잠을 견디며 공부하고 있다. 그렇게 어렵게 입학한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취업이 되지 않는다. 경제가 성장하지만 고용은 없다. 어렵게 취업하더라도 비정규직이 태반이며, 정규직이라도 안정성을 보장할 순 없다. 매일매일 지친 노동에 힘들어하지만 가계 빚은 늘어만 간다. 며칠 전에도 사업실패로 부산에서 일가족이 자살했다. 힘든 교육과 사회현실을 솔직히 표현한 시가 잔혹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시를 만들어 내는 우리 교육과 사회가 잔혹교육, 잔혹사회가 아닐까? 우리 어른들은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기 싫어 어린 아동에게 마녀사냥처럼 모든 죄를 씌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젠 잔혹교육과 잔혹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이다.



정의석<미래학습상담센터 소장/인문지행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