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상처, `PTSD’라고 부르지 말자
 
`사회적 희생양’ 개인 심리 치유에 국한해선 안돼
 
정의석 

기사 게재일 : 2014-04-27
 
 
▲ 지난 20일 진도 팽목항에서 실종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
 
 
　세월호 사건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희생자와 가족들이지만 국민들도 곁에서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고통을 함께 공유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번 사건처럼 역사 속의 재난을 온 국민이 자신의 것처럼 경험한 것은 드문 일일 것이다. 그만큼 끔찍하고 안타깝고 분개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기에 사고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도와줄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고자 하였다. 정신과 의사, 임상심리학자, 상담자 등 심리적 문제와 관련된 영역의 종사자들도 그들의 지식과 경험을 그들을 돕는 데 기꺼이 사용하고자 했다. 하지만 희생자들의 고통스러운 경험과정을 감소시켜주기 위해 개입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잘못을 하고 있는 듯하다.

　

　고통의 사회적 의미 자각 계기로

　

　그 첫 번째는 그들의 경험을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매우 간단한 진단명으로 명명한다는 것이다. 치료 이전에 정확한 진단명이 나와야 되는 것이 일반적 치료과정의 절차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사회적 공감과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채, 일부 전문가 집단에서 명명한 진단명을 사용하는 것은 희생자들에 대한 개인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는 언론에서 PTSD라는 용어를 무차별적으로 사용하기 전에 그리고 심리치료를 실행하기 전에 이 사건을 PTSD라고 부르는 것이 정당하며,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효과적인가에 대해 토의해볼 필요가 있다.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란 미국정신의학회에서 정의한 하나의 진단명으로 전쟁, 사고, 자연 재앙, 폭력 등 심각한 신체 손상이나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이후 발생하는 불안장애의 하나로 정의한다.

　희생자와 피해자들은 PTSD치료를 받은 후에 자신들의 경험을 정신과적 장애의 하나로 이해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치료과정에서 사건 자체의 끔찍함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며, 자신들의 고통을 감소시키는 데 심리적 자원을 다 소진시키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공포, 고통, 외로움, 원망, 분노, 쓸쓸함, 무력감, 공허감 등 다양한 정서적 체험들을 고통을 승화시키는 데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고통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고통의 사회적 의미와 가치에 대한 문제 인식이 희석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 사건은 단순히 제도, 비리, 양심, 문화 등의 차원을 넘어서 우리 사회에 내재된 가치가 오래전부터 심각히 부패되어 있음을 알리는 사건이다. 단지 희생자들의 심리적 증상만이 사라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끔찍한 경험을 또 다시 후대에 물려줘야할지 모른다. 이제 이러한 비극은 그만 일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의 고통의 사회적 의미를 지각할 때 오히려 치유의 길은 빨라질지 모른다.

　

　그들 고통에 합당한 이름 불러줘야

　PTSD란 용어는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사회는 희생자들의 심리적 고통이 심리평가 등의 측정을 통해 감소되었다면 그로서 사회적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하고 기억의 너머로 사라지게 둘 것이다. 또한 사회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을 앞으로는 PTSD라고 아무런 의심 없이 부르게 될 것이다. 5·18희생자, 국가기관의 민간인 사찰 피해자, 폭력적 시위진압에 의해 다친 노동자들의 고통을 더 이상 PTSD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회의 도덕적 민감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발생한 피해자들이며, 우리의 고통을 대신한 희생양이다. 우리는 그들의 고통에 답해야 하며, 그들의 고통에 맞는 올바른 이름을 불러줘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신화에 나오는 것처럼 그들의 고통에 합당한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그들의 고통을 가라앉힐 수 있을지 모른다.

　정신건강과 관련된 전문가들은 미국에서 정의된 사회적으로 중성적인 진단명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보고 우리 사회가 도덕적으로 더욱 성숙해질 수 있는 이름을 찾아보았으면 좋겠다.

정의석<미래학습상담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