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촌 청춘들에 `마이크’ 쥐어줬더니…
 
김우리 uri@gjdream.com
기사 게재일 : 2014-05-01
 
 
▲ 30일 대의동 한 카페에서 열린 `청춘점화’ 프로그램에서 한 청년이 마이크를 잡고 자신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용기’라고 말하고 있다.
 
 
-대의동 카페에 모여 꿈, 취업, 불안 등 속내 토로
-`양념쳐 스튜디오’ 기획 `청춘점화’서 목소리 표출
-“네 잘못이 아니야, 세상을 넓게 보자” 격려 무대


　광주 대의동 고시촌 청춘들이 속내를 털어놨다. 이는 우리 시대 100만 명에 육박하는 일명 취준생(취업준비생)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연 하나, 꾸역꾸역 공부중인 취준생.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하소연하게 돼서 조금 웃기지만요. 저는 졸업과 취업준비 모두 늦어져 막연하게 공기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사실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정신없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외롭고 끝이 안 보이는 상황, 무심한 가족들, 압박감과 부담감, 힘든 게 너무 많아요.

　#사연 둘, 취준생의 탈을 쓴 27살 백조.

　계획했던 공무원 준비기간 3년이 지나고 이제야 제 꿈을 꺼내보았어요. 사실 저는 공무원이 되고 싶은 간절함이 없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것은 노래 부르는 것이고, 취미로 피아노와 바이올린·기타 등 악기를 배웠지만 직업에 있어 부모님은 완강하셨습니다. 저는 뮤지컬배우를 꿈꾸고 있는데, 용기가 나지 않아요. 취직과 꿈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꿈과 취업, 둘 다 쫓는 청춘부터 기약 없이 하나에만 매달린 청춘까지. 현실이 버거운 청춘들의 사연이 도착한 곳은 지난 30일 대의동 한 카페다. 이름하여 ‘청춘점화’. 다양한 문화 활동을 통해 청춘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기획된 이번 행사는 2014 지역문화예술육성사업으로 젊은 예술가 네트워크 그룹인 양념쳐스튜디오가 주최·주관했다.

　양념쳐스튜디오는 지난 한 달간 SNS를 통해 청년들의 심정을 수집하는 등 이번 행사의 근간이 될 작업을 진행해 왔다. 특히 대의동 학원가를 중심으로 행사를 홍보하고, 일대 식당 등을 돌아다니며 사진 작업과 인터뷰 등을 통해 청년들을 만났다.

　그렇게 탄생한 영상이 행사 초반에 공개됐다. 배경은 각종 공무원 고시학원들이 빽빽하게 늘어선 동구 대의동. 주머니 가벼운 취준생들을 위한 저렴한 분식점과 원두커피를 1000원에 파는 카페 광경이 펼쳐진다. 영상을 지켜보던 20여 명의 청춘들은 익숙한 공간 속에 비춰진 자신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듯 한동안 말이 없다.

　청춘들의 억눌린 감정을 드러내도록 하기위한 자리도 마련됐다. 20장의 마음 카드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고르는 청춘들. 미래학습센터 정의석 소장의 진행으로 자연스런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한 청년이 뽑은 카드는 ‘자긍심’. “현재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지만, 지금 그래도 가장 필요한 것이 자신감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청년은 “막 제대를 했기 때문에, 앞으로 새로운 것들을 해나가야 한다”면서 ‘도전’을 뽑았다. 이밖에 대부분의 청년들도 ‘감사’, ‘용기’ 등의 긍정적인 카드를 뽑으며, 희망을 이야기했다.

　이어 다양한 예술 공연도 진행됐다. 현대무용가 이지혜의 퍼포먼스, 바닥프로젝트의 공연 등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무대가 세 시간여 행사를 풍성하게 했다.

　행사 말미에 만난 양념쳐스튜디오의 감독 박연숙 씨. 청년들의 아픔에 충분히 공감했다고 했다.

　그는 “이번 행사는 청춘들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해주기 위함도, 청춘들에게 메시지를 주기 위함도 아니다”면서 “단지 청춘들이 겪고 있는 아픔이 ‘자신의 잘못만이 아님’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나라의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젊은 친구들이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계속 뭔가를 준비하고 있어야 하잖아요. 많이 안쓰러워요. 청춘들이 꿈을 이루지 못해 오늘을 포기해야 하는 현재의 상황이 개인의 잘못만은 아니잖아요?”

　특히 이번 행사를 준비하며 만난 청춘들은 그에게 중요한 화두를 던져줬다고.

　“청춘들이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개인은 모두 다른데, 하나의 시스템에 맞춰야만 살아남는 사회니까 자신을 채찍질할 수밖에 없는 거죠. 얼마나 아프겠어요? 이런 대화와 공연을 통해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 청춘들도 알게 되지 않을까요? ‘내 잘못만이 아니야, 세상을 좀 더 넓게 보자’라는 것을.”

　처음 시도인 만큼 우려도 있었다.

　“쉽게 꺼낼 수 없는 이야기를, 하겠다고 나서는 청춘이 얼마나 될까 걱정이 많았어요. 우여곡절 끝에 알음알음으로 연락이 된 친구들이 마음을 열고 이야기 했을 때, 이런 행사를 기획하기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박 감독이 만난 청춘들은 ‘자신들을 위해 행사를 연다는 것 자체가 낯설다’면서도 ‘큰 용기가 될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아직 확정된 것은 없지만 앞으로도 청춘들을 위한 행사를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