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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석의 진로를 묻다]대학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정의석
기사 게재일 : 2014-05-11

　어떠한 조직이든 사회적으로 순기능과 함께 역기능도 가지고 있다. 만일 대학이 지금까지 인식되지 못한 역기능에 비해 알려진 순기능이 적다면 비록 인식되지 못했던 역기능이 많더라도 대학은 존립가능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학이라는 조직과 제도가 가지고 있는 순기능에 비해 잠재된 역기능이 많다는 것을 발견해봄으로써 대학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현실적 대안을 찾아보는 기회를 가져보았으면 좋겠다.

　

　생존과 안전을 확보한다는 기대감?

　

　대학의 순기능은 무엇일까? 대학이 존속 가능한 것은 각 개인이 대학을 선택한 것에 기인하므로 대학이 개인의 어떤 욕구를 충족시켜주는지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 대학은 학생의 인격을 성장시키지는 않는다. 그리고 학생을 행복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대학은 단지 취업에 필요한 학력과 학점 그리고 스펙과 지식을 팔고 있다. 학생들은 사회에서 제공하는 최고의 고등교육을 받고 있다는 의식도 없고, 대학생이라는 정체감도 없고, 취업을 준비하는 `인생훈련병’이자 `취업준비생’이라는 의식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대학을 선택한 학생들은 취업에 유리한 상대적 우위를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는다. 서울대학교 학생은 연세대 학생들에게, 연세대 학생들은 서강대 학생들에게, 수도권 학생들은 지방대학생들에게, 지방의 국립대 학생들은 사립대 학생들에게, 지방사립대 학생들은 전문대 학생들에게, 전문대 학생들은 대학에 미 진학한 고등학교 졸업자들에게 위계적 순서에 따라 상대적 우위를 차지한다는 믿음을 갖는다. 우리들은 자기보다 못한 자를 바라봄으로써 행복하다는 환상을 갖는 비극적 상황에 처해있다. 대학이라는 학력, 학벌을 통해 타인에 비해 생존과 안전을 조금 더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 때문에 대학은 존재 가능하다.

　

　대학은 전문가를 만들지 못한다

　

　그렇다면 대학의 역기능은 무엇일까? 대학의 역기능은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 모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대학은 대학을 진학한 사람을 전문가로 만들지 못한다. 한 사람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내용과 방법이 필요할까? 상식적 수준에서 간단히 말하면 폭넓은 지식과 깊은 사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폭넓은 지식은 다량의 독서가 기본일 텐데, 대학에서 전달되는 지식은 수업시간으로 제한되는 경향이 있다. 수업시간에 제공되는 지식은 매우 협소하다. 왜냐하면 한 학기에 한 가지 전공과목을 마쳐야 하기에 해당영역의 전문지식을 교과서 형태로 요약한 내용만을 배운다. 예를 들어 심리학과에서 상담이론이라는 과목을 배운다면 프로이트에 대해 요약된 이십여 쪽을 배운 것이 전부이다. 다음으로 깊은 사고는 독서를 바탕으로 개인적 사유와 토론 등을 통해 진행될 수 있다. 최근에는 대학이 `교수학습지원센터’등을 만들어 사라져버렸던 교수-학생, 학생-학생 사이의 스터디 문화를 재현하고 있지만 그 역시 스펙의 하나로 형식화되고 있다. 학생들은 장학금과 해외연수지원을 받기 위해 흥미 없는 스터디 그룹에 참여하곤 한다. 대학에서 학생끼리 교과서 혹은 교과서 이외의 내용을 가지고 토론하거나, 학생이 편하게 교수를 찾아가 학문적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최근 십여 년간 거의 본적이 없다. 껍데기만 대학생일 뿐이다.

　

　대학이 양성하는 이기적 인간

　

　다음은 대학이 가지는 사회적 역기능에 대해서 알아보자. 가끔은 고등학교 교문에 `진리’라는 교육이념이 쓰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고등학교마저 진리에 대한 탐구와 발견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나이와 상관없이 교육공동체가 진리에 대한 탐구를 목표로 한다면 가능한 일일 것이다. 지금의 대학은 어떠한가? 광주의 모 국립대학의 교육이념은 `진리’, `창조’, `봉사’이다. 그 세 가지 교육이념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 내용과 가치에서 매우 회의적이다. 대학은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하도록 선한 인재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사회적 가치에 대한 기준을 제공해야 한다. 대학이라는 교육제도를 통해 우리가 사회에 내보내는 인간들의 군상을 보면 대학은 인재를 양성한다기보다 이기적 인간, 그것도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타인의 고통과 사회적 고통도 충분히 인내할 수 있는, 일명 우리가 사이코 패스라고 불릴 만한 범죄자를 양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 대학 간호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였다. 가장 앞줄에 있던 한 남학생이 수업 중 책상 아래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가만히 가서 보니 게임이었다. 나는 그 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그 학생은 전혀 부끄러움과 당황스러움을 보이지 않고 물끄러미 나를 2~3초 간 쳐다보았다. 그 학생은 그때까지 핸드폰을 내려놓지 않았다. 나는 수업 중에는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한 후, 그렇게 게임이 하고 싶다면 뒷자리로 가서 몰래 하라고 말했다. 뒤 돌아서서 강단으로 와보니 그 학생은 이미 그 자리에서 엎드려 자고 있었다.

　그 학생은 왜 간호학과에 왔을까? 아마 간호학과가 취업이 잘되며, 여학생에 비해서 남학생이 적으므로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병원에 입원하여 그 학생에게 간호를 받는다는 것을 상상하면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전문가라는 이름표를 달았다는 이유만으로 공부도 하지 않고, 인간에 대한 기본적 태도로 갖추지 못한 이에게 나의 생명과 건강을 맡긴다는 것은 공포이다. 하지만 세상을 둘러보면 문제가 되는 사람이 그 학생만은 아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해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전공수업에서 흥미를 보이는 학생이 많지 않다는 것을. 어른들도 그 학생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우리 모두가 그 학생의 모습을 어느 정도는 조금씩 지니고 있다.

　

　대학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최근 세월호 사고에 대한 신문기사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부 사람들은 세월호에 대한 방송도 이야기도 그만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 그들도 유가족에 대해 고통을 느끼지만 경제를 위해서, 국론의 통일을 위해서, 사고에 대한 현실적 처리를 위해서 더 이상 분노와 슬픔에 빠져서 국가에 대해 비판적 글을 쓰거나, 촛불행사와 같은 것을 그만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삼십년 전에는 민주화를 위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노동자로 분신자살을 하였지만, 지금은 대학에 있는 어느 교수도 공론의 장에서 정부를 비판하지 못한다. 대학 구석에 있는 분향소와 대학 주변에 몇 개 걸려있는 현수막이 대학이 할 수 있는 전부라는 것에 분노를 느끼게 한다.

　과거 유교에 근거한 교육제도는 최신 서양교육제도에 의해 오래된 지식, 뒤쳐진 지식, 발전을 막는 지식으로 치부되어 교과서와 박물관에 매장되었다. 하지만 서당, 서원, 성균관 등에서 양성하고자 했던 인재는 백성을 이롭게 하기 위해 사회적 가치를 가슴에 품은 이들이었다. 유교가 왕에서 귀족 그리고 백성에 이르기까지 감화에 의한 정치에 의존하였기에 왕이나 귀족이 잘못되어 백성이 고통스러웠던 시기가 있었으나 교육은 근본적으로 건강한 공동체를 지향하였다. 한국의 교육제도에 깃든 철학을 버리고, 한국의 전통적인 고등교육제도를 대체한 현재의 서양식 대학은 어떠한가? 이기적 인간을 양산하여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지옥을 만들지 않았는가!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건강한 인재가 필요하다. 교과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기 위해 취업률과 대학구조조정에만 관심이 있는 교수사회로는 대학이 건강한 인재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억대 연봉의 교수가 더 많은 수입을 받기 위해 프로젝트에 매달려서는 대학이 선한 인간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학이 산학협력이라는 이름으로 기업과 자본에 종속되어서는 비판적 인간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2010년 고려대학교 김예슬 씨, 2011년 서울대학교 유윤종 씨의 뒤를 이어 중앙대학교에서 김창인이라는 학생이 자퇴를 선언하였다. 그는 자퇴 선언문에서 `지금 대학에는 정의가 필요한 시기이다’라고 적고 있다. 하나의 조직은 자신의 문제를 전체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조직 내 있는 제도, 특정인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제는 대학의 문제를 대학 전부, 대학 자체로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대학의 순기능을 넘어서는 역기능과 사회적 해악에 대한 책임을 대학에 물을 필요가 있다. `너희가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다’라고 꾸짖을 필요가 있다. 만일 그렇게 해도 되지 않는다면 대학은 과거의 유물로 박물관에 남겨져야 하지 않을까? 암울했던 시대를 만들었던 오적의 한 축으로 명명되어서 말이다.

정의석 <미래학습상담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