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석의 진로를 묻다]`직업’으로만 귀결되는 진로 상담
 
`직업·관계·여가’ 통합 고민해야
 
정의석 
기사 게재일 : 2014-06-15
 
 
▲ 영화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한 장면.
 
 
　이번엔 학부모들이 갖고 있는 진로에 대한 잘못된 개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학부모들이 모여서 자녀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학과·직업에 대한 내용이 전부다. 몇일 전 대학동창들과 가족모임을 가졌다. 동창들이 중고등학교 자녀가 있을 연령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어떤 이야기가 나와도 자녀들의 학업과 진로 이야기로 모아졌다. 한 가족은 자녀가 문과의 비인기학과를 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다른 가족은 자녀가 초등학교 시절 반기문 총장의 전기를 읽고 외교관이 되고 싶어 한다고 했다. 진로에 대한 이야기가 대체로 그렇듯 종결은 성적이 진로를 결정한다는 것으로 어이없게 끝났다.

　

　좋은 직업=안정적인 직업?

　

　부모들은 자신이 살아본 삶의 경험을 토대로 어떤 직업이 좋은 직업인지를 판단한다. 부모들이 생각하는 좋은 직업이란 대체로 안정적인 것을 말한다. 부모들에게 명예나 인기와 같은 정신적인 가치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오래 충분한’ 수입을 유지할 수 있는가가 절대적 기준이다. 그렇기에 취업과 개업 등이 힘들어진 의사라는 직업은 이제 부모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부모들이 이렇듯 안정적인 직업만을 쫓는 것은 직업에 따라 삶의 격차가 벌어지고, 직업의 수준이 낮아지면 사회적으로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불안정한 삶을 지속해야 된다는 것을 체감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는 사회적 구조가 진로결정의 핵심이 되는 가치관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태도는 분명 한국사회에 적응하는데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교사와 공무원 등은 국가가 제공하는 안정적 제도 안에서 명예퇴직과 같은 갑작스러운 실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임금체불과 같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일정한 보수를 가족을 부양할 기간 안에 유지할 수 있음으로서 자녀에게까지 사회적 수준을 물려줄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부모들은 안정적 직업이 자신의 자녀뿐만 아니라 자녀의 자녀에게까지 계층의 세습을 확보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질 만하다.

　안정적 직업을 갖는다는 것이 분명히 삶의 만족을 높이는 물적 토대를 제공한다는 점은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충분한 조건은 아니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높았을 시기에 부를 확보했던 행복한 세대를 보자. 현재 그들의 삶은 어떠한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직업에서 큰 어려움은 없지만 직업 외의 생활은 참으로 볼품없다. 부모교육을 하다보면 남편에 대한 아내의 불만이 크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 불만 중 한 가지는 자녀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자녀와 대화도 없고, 자녀가 성적이 좋지 않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만 관심을 가진다. 또한 남편들은 골프 등 자신의 취미 생활 이외에는 가족들과 공유할 수 있는 취미를 가지고 있지 못하거나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함께 사는 것은 남편이 대기업, 공사 등에 다니고 있기에 경제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실직한다면 언제라도 이혼하고 싶다고도 한다.

　

　통합적 삶의 관점으로 이해해야

　

　열심히 일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배우고, 여가란 그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 푸는 정도로만 이해되고, 가족이란 일을 위한 토대가 되는 정도로만 인식되던 세대들의 삶이란 겉으로는 풍요롭지만 내적으로는 빈곤하다. 부모들이 지금 자신의 자녀에게 바라는 삶은 이런 공허한 삶이 아닐 것이다. 즐거움과 의미가 충만한 삶을 살기를 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자녀에게 직업생활 이외에 타인과 관계에서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방법과 여가를 통해 자신의 삶을 고양시키는 방법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즐거움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첫째, 가족들과 여러 가지 주제로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경험을 가져야 한다. 둘째, 친구들과 만나서 특정 주제로 이야기하고, 싸우고, 화해하는 일상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경험들을 하도록 해야 한다. 만일 지금 자녀가 학교에서 이야기 나눌 친구가 없거나, 이야기 나누는 것이 어눌하다면 어른으로서 삶도 행복하기 어려울 수 있다. 다음으로 여가를 통해 자신의 삶의 고양시키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취미생활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학교에 가서 청소년 집단상담을 하다보면 가장 안타까운 학생들은 집에서 해본 것이 컴퓨터 게임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아이들이다. 특히 도시의 저소득층 학생들의 문화적 결손은 심각하다. 읍면단위에서는 방과 후 프로그램 이 무료로 제공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양한 취미는 탁구, 볼링, 스케이트, 축구, 농구, 야구 등 체육과 관련된 것도 있고, 노래 부르기, 피아노, 우쿠렐레, 바이올린, 드럼 등 악기 연주하기, 춤, 관현악이나 발레 등 공연관람 등 음악과 관련된 것도 있고, 독서와 연극, 글쓰기와 관련된 학문과 관련된 영역도 있고, 그림그리기, 도자기 만들기, 가구 만들기, 색칠하기 등 미술과 관련된 영역도 있다. 인간의 삶과 행복은 단순하지 않다. 직업과 함께 사람과의 관계, 여가의 균형과 조화가 갖추질 때 깊은 삶의 가치를 체험할 수 있다. 우리는 자녀의 진로를 생각할 때 ‘직업’이라는 제한된 관점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직업-관계-여가’라는 통합적 삶의 관점으로 진로를 이해했으면 좋겠다.

정의석<미래학습상담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