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석의 진로를 묻다]자녀 위해 부모가 하지 말아야 할 `3不’<1>
 
부모 직업을 물려주려 하지 말라
 
정의석 
기사 게재일 : 2014-07-13
 
 
 
 
 
　장성에서 강의를 마치고 인근에 있는 필암서원과 청렴문화센터에 들렀다. 문화센터 관람 중 흥미로운 내용을 하나 보았는데, 조선시대 공직자들이 지켜야 할 덕목으로 `4不3拒’라는 내용이 있었다는 것이다. 4不3拒란 `공직 중에는 땅을 사지 않는다, 집을 늘리지 않는다, 윗사람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한다’는 내용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요즘 청문회에 나오는 후보자들과는 판이하게 달라서 헛웃음만 나왔다. 다소 생뚱맞기는 하지만 진로와 관련해서 부모들이 하지 말아야 할 3가지를 이야기해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이야기할 그 첫 번째는 “자신의 직업을 물려주려 하지 말라!”이다.

　

　도전과 선택에 대한 도피처?

　

　가업 등의 긍정적 측면을 생각하는 분에게는 무슨 엉뚱한 소리인가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업이 유지되는 과정을 상상해보자. 가업을 물려받은 자녀들이 모두 처음부터 가업을 순순히 물려받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가업을 수용하기까지 거부와 방황과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조상의 직업이 가지는 가치가 무엇인지 숙고해 보았을 것이다. 예전의 가업은 가업을 물려받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겠지만 직업정신의 계승이 중요한 덕목이었다. 하지만 요즘 부모들이 생각하는 가업에는 그런 면이 없다.

　전남의 섬 중 하나에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집단상담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학생 중 일부는 대학 진학을 위해 일반 도시 아이들처럼 열심히 공부를 했다. 다른 일부 학생들은 전혀 공부를 하지 않고 여유롭게 놀고 있었다. 그들에게 미래에 대한 걱정이라고는 없는 듯 보였다. 그 학생들에게 고등학교 졸업 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 물어보았다. `어업’을 할 것이란다. 부모님들이 자신이 공부를 하고 있지 않거나, 성적이 나쁘면 “대학교 갈 필요 있냐! 대학 나와서 직장 들어가 월급 받아야 얼마나 된다고. 그냥 엄마, 아빠가 하는 일이나 해라! 엄마, 아빠가 하는 일이 훨씬 벌이가 낫다”는 이야기를 하신단다. 그들은 부모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에는 지역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부는 재미없고, 자신이 해야 할 직업은 모르는 상황에서 부모님의 이야기가 점점 도전과 선택에 대한 도피처를 제공했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그들은 가업을 물려받을 생각을 해버리게 된 것이다.

　

　자녀 삶의 폭 지나치게 좁힌 것

　

　혹자는 이런 결정과정이 무엇이 문제냐고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잘 사는 사례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한 경우라도 외적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성급히 판단할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도 함께 봐야할 필요가 있다. 자녀가 능력이 부족해서 가업을 물려주는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자녀에게 삶을 고난을 극복할 의지와 자신감을 상실하게 한다는 점이다. 자녀들이 가업을 물려받으면서 가업을 물려받은 이유를 겉으로는 일반 근로자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어서라고 말하지만, 내면에서는 자신의 무능력함 때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여러 가지 난관을 경험하면서 직업과 인생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배울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가업을 발전시키려 하지 않고, 습관처럼 일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다음으로 중요한 문제는 다른 사회적 경험이 제한되거나, 대학생활을 하지 않는 것은 이후에 자녀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는 점이다. 단지 자녀의 삶뿐만 아니라 자녀의 자녀들에게까지도 그 영향력이 미친다. 우리가 대학을 진학하는 것은 단지 취업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대학에서 교수·선배·동료 등을 통해 인간관계에 대해서,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삶과 인격에 대해서 배울 수 있게 된다. 또한 다양한 교과목, 동아리 활동, 교외활동 등을 통해서 문화적 삶을 살 수 있는 토대를 배우게 된다. 대학은 삶을 더 풍요롭게 향유하기 위한 배움의 과정인 것이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가업을 잇게 함으로서 자녀의 삶의 폭을 지나치게 좁혀버린 것이다.

　

　진로는 네가 결정…부모 도움 기대말라

　

　어떤 어머니가 자녀가 무기력하고 공부를 너무 하지 않아서 상담을 받으러 왔다. 그 어머니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수성가하신 분이었다. 자녀가 공부를 하지 않고, 게임만 하면서 무기력하게 있을 때마다 자녀에게 자신의 직업을 이어보라고 권유한다고 하였다. 나는 어머니와 자녀 모두에게 앞으로 그런 이야기를 절대 하지 말라고 하였다. “어머니의 과잉보호가 오히려 자녀가 공부를 하지 않을 핑계를 만들어주고 있을 수 있으니, 앞으로는 졸업 후 진로는 네가 결정해야 하며, 무엇인가를 하려 할 때 엄마에게 도움 받을 생각을 하지 말라고 자녀에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자녀의 행동을 볼 때마다 엄마가 느꼈을 염려와 막막함이 충분히 공감은 된다. 하지만 그렇게 자녀가 자신의 직업을 물려받는다고 자녀가 행복해질까? 또는 변화하는 미래의 환경에서 적응할 수 있을까? 그 어느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다행히 그 어머니는 그 후로 그런 이야기를 많이 자제하게 되었고, 자녀 또한 학습태도가 일부 변하고 있다고 한다.

　자녀가 부모 곁에서 부모의 일을 지켜보고, 도와주면서 그 직업의 가치를 이해하여 가업을 잇는 것은 그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의미 있는 일이며, 사회가 그러한 관습이 유지, 발전되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직업정신이 배제된 단지 자녀의 무능력과 부모의 과잉보호가 빚어낸 진로선택의 하나로서 가업이라면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정의석 <미래학습상담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