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석의 진로를 묻다]입학사정관제(학생부종합전형) 준비하기
 
사회가 그릇되고 왜곡될수록 진로 지도는 `원칙’ 돌아가야
 
정의석
기사 게재일 : 2014-10-20 06:00:00 
 
 


　입학사정관제가 2008년 생기면서 대학입시 준비과정이 많이 변모되었다. 가장 피부로 느껴지는 대표적인 것이 원서접수 시기이다.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이지만 수시라고 하는 과정이 생기기 전에는 수능을 본 후에 원서를 접수하였다. 그렇다보니 학과를 결정하는 것이 3학년 말까지 미뤄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기간이 단축되어 3학년 1학기가 되면 결정을 해야 한다. 학부모와 학생의 대입을 위한 시계는 9월에 맞춰지게 되었다. 그만큼 기간이 짧고 다급해진 면이 있다.

　다음으로 변화된 것은 수능이후 지원하는 정시보다 수능 이전에 지원하는 수시에서 선발하는 인원이 더 많다보니(2015년 기준 약 67%) 수시에 합격하지 못하게 되면 정시에서 선발될 수 있는 확률이 더 낮아졌다는 점이다. 수시는 다시 여러 전형으로 구분되는데 미리 지원하기는 하지만 성적 특히 학생부 성적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것이 있는가하면(학생부교과전형), 학생부 이외에 비교과, 면접 등의 여러 측면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전형도 있다(학생부종합전형-예전에 입학사정관제에 해당함). 평가의 중요 기준을 교과와 거리가 있는 ‘비교과 활동’(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 등)으로 하는 학생부종합전형은 입학지원서, 자기소개서, 면접 그리고 지원학과와 연관된 자료 등을 제시해야 하므로 진로결정과 그에 따른 준비를 고등학교 3학년 이전에 되도록 일찍 시작해야만 한다.

　

 　고3 초기,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

　진로결정은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되도록 빨리 완결하고, 고등학교 3년 동안 그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하는 입시전략의 변화는 사실 학부모와 학생 모두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진로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 해왔지만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도 분명한 진로선택을 하기는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교육의 초점은 ‘학업능력’에서 ‘진로’로 변경되었다. 그렇다보니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진로관련 프로그램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학생들은 여전히 진로선택이라는 문제 앞에서 혼란을 느끼고 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첫 번째 이유는 독서다.

　독서는 가장 효과적으로 진로를 결정하게 도와주는 도구이다. 독서는 자기와 세상을 이해하게 해주며, 자신이 앞으로 살 세계와 그 속에서 살 자신의 모습을 그리도록 해주며, 세상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게 해주며, 앞으로 마주할 다양한 선택에 대한 올바른 판단력을 갖추도록 해주며,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창조할 수 있는 창의력을 형성하게 해준다. 진로와 관련된 그 어떤 활동들도(직업체험, 특정 직업인의 진로강의, 진로검사) 독서를 통한 직업 이해에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어떤가? 교과서와 자습서, 문제집을 푸는 데 모든 노력과 시간을 쓴 나머지 독서에는 할애할 시간이 전혀 남아나질 않는다.

　

 　진로 결정 판단 조력자는 독서

 인간은 학명으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부른다는 말을 오래전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들었다. 이 학명의 뜻이 ‘생각하는 존재’라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은 안다. 인간의 본질 중 한 가지가 ‘생각’이다. 그런데 그 존재가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이젠 본능에 충실한 다른 동물과 비교해서 어떤 다른 특징을 찾아 그에 합당한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할까? 요즘 학생들이 교재 이외에 읽는 책이라곤 웹툰, 인터넷 소설, 판타지 소설, 추리 소설 정도가 전부이다.

　진로결정이 어려운 둘째 이유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더 이상 어떤 직업에 대해서도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의사, 판사, 교사 등 어떤 인기 직종이건 그러한 직업 관련 역할을 했을 때 즐겁겠다거나, 보람차겠다거나, 행복할 것이라는 느낌은 적고, 편하겠다거나, 안정적이겠다거나, 보수가 많겠다는 느낌만이 클 뿐이다. 이처럼 어떤 직업을 가지든 편하지 않고 고생이 많다고 느낀다면, 어떤 직업을 가져도 결혼과 자녀양육 그리고 자신의 여가생활이 큰 곤란을 경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느낀다면 그들이 진로를 고심해서 결정할 필요가 있을까? 한국의 문화와 제도를 타인을 배려하는 차별이 적은 나라로 단시간에 바꿀 수 없다면 우리 스스로가 자신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다.

　이제 학부모와 교사 그리고 어른들은 어떤 직업을 가져도 편하게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거의 유일하며 가능한 해결책은 그 일을 재미있어하고, 사랑하는 것뿐 이라는 것을 말해줘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와 후손들이 직업에 대한 건강한 가치관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어른의 책임뿐만 아니라 자녀와 학생들도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각성시켜줘야 한다.

　

 　공부만 하면 소개할 ‘다른 것’ 없다

　성적이 아닌 학생의 다양한 측면과 잠재력을 평가에 반영하겠다는 입학사정관제(학생부종합전형)는 다른 모든 제도처럼 형식만 남고 본질은 사라졌다. 학생들은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수능을 준비하다가 입시지원 시기가 다가오면 자기소개서와 면접 준비 등의 수고스러움을 한 번 더 거칠 뿐이다. 학부모는 자녀를 학원에 보내거나 과외만 시키던 것에서 자기소개서, 면접을 도와주는 기관을 추가로 이용하거나, 입학사정관제에 맞게 커리어를 준비해 주는 값비싼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거나, 논술을 가르치는 학원을 추가로 이용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인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직업의 차별이 적고, 계층이동이 더 용이한 사회에 맞게 만들어진 입학사정관제이기에 그와는 다른 풍토인 한국사회에서 학부모와 학생의 부담만 늘리는 천덕꾸러기가 된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겠다. 한국의 문화가 바뀌거나, 입학제도가 바뀌는 것이 당연히 필요한 것이지만 그전에 그 제도에 적응해야 하는 학생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 선택이란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입학사정관제에서 사용하는 자기소개서 공통양식을 예로 들어 살펴보자.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다. ‘고등학교 재학기간 중 본인이 의미를 두고 노력했던 교내 활동을 배우고 느낀 점을 중심으로 3개 이내로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질문에 솔직하고 충실한 답변을 하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시기부터 자신의 생활에 대해서 되돌아보고, 어떤 생활을 해야 하는지 목표를 설정해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공부만 하면 다른 모든 것은 부모와 사회가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수동적이며, 의존적인 삶의 태도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이고 올바른 삶인지를 꾸준히 고민해보는 자기반성적 삶을 살도록 해줘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사회가 그릇된 방향으로 나갈수록, 입시제도가 학부모와 학생의 부담을 늘리는 쪽으로 변할수록, 사회적으로 가진 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왜곡될수록 원칙에 맞는 진로 지도는 그 어떤 때보다 중요해진다.

정의석 <미래학습상담센터 소장/인문지행 교수>


< Copyrights ⓒ 광주드림 & gjdream.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